당신멋져 세상

자존심과 실리

제제마인 2020. 6. 4. 09:54

  코로나19로 온라인개학을 하게 되면서 예전에는 없었던 일들이 생기고 있다. 그중 한 가지가 '긴급돌봄'이다. 원래 초등학교 1, 2학년만 대상으로 돌봄교실을 운영하던 것이 온라인개학으로 원격수업을 하게 되면서 점차 고학년까지 확대된 것이다. 원격수업을 하는 동안 긴급돌봄을 신청한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학교에서 준비한 태블릿 PC로 원격수업을 듣는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 학생은 점심까지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운영되던 긴급돌봄이 이제 등교개학을 하게 되면서 조금 복잡해졌다. 등교개학을 하고 학교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우리 학교는 한 반 안에서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일주일에 2일은 등교수업, 3일은 원격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개학 중에는 돌봄 학생들이 월~금 모두 학교에 왔지만, 등교개학을 하게 되면서 학교에 오게 되는 날이 들쑥날쑥해졌다. 그리고 돌봄학생들을 봐주시는 인력 충원에도 조금씩 차이가 생기면서 학교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게 운영방법이 달라졌다.

  하루하루 회의가 반복되면서 이를 선생님들께 전달하고 전달받는 과정 중에 오해도 생겼다. 돌봄전담 인력이 시작되는 날이 바뀌면서 다른 반 선생님께도 이를 전달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회의한 대로 전달했으니 당연히 전달했다고 여겼다. 내 기억 속에서는 확실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이 이를 모르고 계신 걸 어제서야 알았다. 이상했다. 분명히 모든 것을 이야기했는데 왜 다르게 이해하고 계실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서로의 기억이 정확한 상황이었다. 이를 녹화한 영상도 없으니 판정하기도 애매하다.

  사람은 처음에 배우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한다. 처음 사실에 대한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이 상황을 조금 넓게 보고자 했다. 물론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 중에 내가 빠뜨렸을 수도 있고 상대가 잠시 놓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내 말이 맞니 네 말이 맞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돌봄을 하는 학생 수를 확실히 세어서 급식소나 담당 선생님께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더구나 아직 등교개학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 자기주장을 내세워보았자 싸움만 되고 서로의 감정만 소모하는 격이었다. 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기억은 정확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확실한 기억은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으나 그 사이 많은 일들이 변화하면서 기억에도 왜곡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자존심과 실리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실리를 택했다. 내가 잘못 전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자 그 선생님도 사실은 맞다 아니 다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셨다. 만약 내가 자존심을 내세웠으면 잠깐 내 기분은 좋을 수 있지만 그 외 모든 것이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최태성 작가가 쓴 '역사의 쓸모'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고구려의 실속을 챙기기 위해 최대한 전쟁을 피하는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다. 물론 고구려는 그 당시 힘이 있었고 여차하면 승리할 수도 있었지만 장수왕은 무력이 아니라 실속을 챙기는 유연한 자세로 전성기를 유지했다. 그렇지만 자존심을 챙길 때는 자존심도 챙겼다. 이렇게 역사에 기록된 이러한 사실들은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침반이 되어 준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아니 분명히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지금의 나의 선택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장수왕의 선택을 보고 나도 선택을 했고,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선택을 할 것이다. 물론 매번 같을 수는 없다. 항상 무언가를 택할 때 넓고 크게 생각해서 모두의 목표에 방해가 되지 않는 그리고 나에게도 너무 불이익이 가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다. 아직까지는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