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이혁진 리뷰
도서관에서 막 빌린 새 책을 보고 당황했다. 두께가 너무 두꺼웠다. 678쪽이라니. 2주 동안 다 읽으려면 하루에 대략 50쪽 정도를 읽어야 한다. 과연 할 수 있을지 침이 꼴깍 삼켜졌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2023년 11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새 책이니까.
책 표지는 하얀 바탕에 그림이 가운데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위스키 잔. 이야기 전체적으로 위스키가 주된 소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위스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의 제목이 ‘광인’이라니. 책을 읽기 전에 도대체 이게 무슨 장르일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런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책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은 표지뿐 아니라 차례도 미니멀하다. 7페이지 광인이라고만 나와 있기 때문이다. 숫자로 쓰인 꼭지가 있지만 차례에는 소개되지 않고 있다. 간결하다고 해야 할지 불친절하다고 해야 할지. 제목이 다시 한번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이야기에는 크게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상장하는 회사에서 근무 중인 해원, 음악 교습소를 운영하는 준연, 위스키를 만드는 하진. 처음 이름을 들을 때 생각했던 성별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일까. 해원과 준연은 남자, 하진은 여자였다.
해원이 준연의 음악 교습소를 찾아가 플룻을 배우게 된다. 수업이 끝나고 위스키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며 서로를 이해해하게 되고, 친구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러던 중 준연의 어머니에게 일이 생기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준연에게 해원은 선뜻 돈봉투를 건넨다. 호의로. 나에게는 필요 없을 정도의 액수니까 편하게 쓰라고. 그 돈으로 어느 정도 상황을 해결하게 된 후 준연의 오랜 친구인 하진을 교습소에서 만나자 해원은 사랑에 빠진다. 그렇지만 준연의 눈빛에서 하진을 여자로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 후 얽히고설킨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광인’이라는 말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친 새끼’라는 말은 계속 나온다. 그 말을 순화시키면 ‘광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제목이 ‘광인’인 게 더 나을 거 같긴 하다.
이 소설은 대화 부분에서 큰 따옴표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줄글로 대화가 표현된다. 줄을 바꾸면서 화자가 바뀐다. 대화와 설명이 언뜻 구분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구성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점은 소설이지만 마치 시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하고 풍부한 묘사와 표현이다. 매 꼭지의 거의 모든 상황에서 묘사하는 글이 매혹적이다. 얼핏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곱씹어볼 만하다. 맛표현은 또 어떻게 그렇게도 멋진지. 위스키의 맛을 표현하는데 한 페이지 전체를 쓸 정도다. 먹방 패널들은 이 책을 보며 배워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도 멋진 글들이 이어지는데 꼭지의 마지막마다 반전을 심어놓아 도저히 그만 읽을 수 없도록 만든다. 전체적으로 해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 해원이 시작하고 해원이 끝을 맺는다.
긴 이야기였지만 다시 읽어볼 의향이 충분한 책이다. 전작인 ‘사랑의 이해’가 드라마로도 나온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책이든 드라마든 접하지는 않았다. 과연 이 책도 드라마나 영화로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또 어떻게 이야기가 표현될지 너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