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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더블링 - 특별한 날엔 아란치니지맛있는 세상 2020. 5. 20. 10:15
어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벌써 결혼을 한 지 2년이나 지났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지나갔다. 우연한 기회에 파라다이스호텔 뷔페를 접하고 난 후 결혼기념일은 꼭 여기서 하자는 이야기를 아내와 했고 그것은 작년까지 유효했다. 하지만 코로나사태가 발병한 후 모든 것이 변하고 결혼기념일 식사장소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뷔페라는 장소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녀야 한다. 또 같은 음식을 다양한 사람들이 쳐다 보고, 음식을 집고 접시에 덜어야 한다. 코로나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이 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음식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아내가 임신 중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차선책을 생각해야 했다.
과연 특별한 날에는 무엇을 먹는가? 평소에 먹지 않는 음식이면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음식. 또한 아내가 입덧으로 힘들어 하기에 냄새가 심하거나 오랫동안 먹는 음식은 불편하다. 파인다이닝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오랫동안 먹어야 하기에 제외되었다. 파스타. 아내의 최애 음식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파스타와 비슷한 느낌이면서 조금 더 특별한 음식. 임신 전 데이트 때를 떠올렸다. 뭐가 있지, 어떤 게 좋지. 아란치니. 이름도 생소한 이 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조금 당황했다. 주먹밥튀김? 고로케 모양? 이게 뭐지 싶었다. 하지만 반을 가르니 하얀 치즈가 끝도 없이 나오고 주변 소스와 함께 먹었을 때 그 아삭하고 입안 가득한 풍미는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이거다. 아란치니다. 파라다이스 뷔페를 대신할 녀석은 이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아내도 좋아했다. 역시 결혼기념일엔 아란치니지.
퇴근 후 찾은 가게는 코로나때문인지 손님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음식을 먹고 있는 손님들의 표정이 좋아보였다. 기대가 된다. 서면에 있는 더블링이다. 우리는 아란치니세트와 뇨끼를 시켰다. 오징어먹물과 김치베이컨 아란치니. 크림뇨끼를 시켰기에 아란치니는 로제소스로 정했다. 겹치면 안 된다. 최대한 다양하게 맛보아야 한다. 그게 좋다. 오랜만에 가게에서 먹는 음식은 예전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데이트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앞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이런 둘만의 시간은 줄어들겠지. 지금은 지금만 생각하자. 아직 만나지 않은 일때문에 지금의 기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이다도 먹었다. 이런 날엔 와인 한 잔도 괜찮지만 아내는 임신, 나도 술은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라 사이다로 결정했다.
뇨끼에는 새우가 4마리, 가운데는 소고기가 있었다. 새우. 나는 새우를 못 먹는다. 알러지다. 작년에 알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암튼 아내는 새우를 좋아하기에 나랑 잘 맞는다. 아내는 오이를 못 먹지만 나는 오이케이크도 맛있어 보일 만큼 좋아한다. 아내 말로는 새우가 아주 맛있게 익혀졌다고 했다. 나는 그게 싫다. 그래서 소고기를 주로 먹었지만 아내와 나눠 먹었다. 무엇이든 혼자서 막 먹으면 안 된다. 함께 먹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조각은 반으로 잘라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소고기도 좋아하기 때문에 새우를 다 먹었다고 소고기를 못 먹으면 서운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음식을 바닥까지 싹 비웠다.
결혼기념일에는 역시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맛있는 걸 먹는 것이다. 임신과 코로나로 평소에 이런 음식을 많이 못 먹었기에 좋은 선택이었다. 다음 결혼기념일, 그 다음 또 그 다음 결혼기념일 모두 행복한 지금 모습을 유지해야지. 좋은 관계는 끝없이 노력하는 관계여야 한다. 이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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