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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남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임용고시를 쳐야 한다. 임용고시를 치는 방법은 매년 조금씩 바뀐다. 치고자 하는 지역제한을 둘 때도 있고 가산점을 바꿀 때도 있다. 임용고시는 내가 지원하는 지역을 한 곳만 고를 수가 있다. 가령 내가 부산에서 교사가 하고 싶으면 부산에만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티오가 나오면 눈치싸움이 대단하다.
여자친구를 막 사귀었을 당시 나는 임용 재수를 하고 있었는데 점수가 생각보다 나오지 않아서 안전하게 도지역을 생각했었다. 일단은 붙고 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함께 부산으로 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우리 둘의 집은 모두 부산에 있고 여자친구는 부산에 지원해서 부산에서 교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막상 이런 제안을 받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달까. 그래서 부산으로 소신지원을 했지만 처참히 탈락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그 다음해에 함께 임용공부를 할 수 있었다. 벌써 세번째 공부였지만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여자친구와 꼭 함께 붙어야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이 있는 11월이 다가오자 부산을 지원하는게 맞는 걸까, 혹시 이번에도 떨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렇게 되면 이 짓을 또 한 번 더해야 하는데 몹시 두려웠다. 동기들은 하나 둘씩 임용에 합격해서 선생님을 하고 있었고 침대에 누우면 왠지 모르게 땅 밑까지 푹 꺼지는 느낌이 드는 등 불안이 심했다. 함께 부산을 꿈꿨지만 나는 결국 부산과 가까운 경남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경남에 붙으면 부산으로 다시 지원해서 시험을 보겠다고 여자친구와 약속했다. 그 해 우리 둘은 모두 다행히도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 나서 매일 일하고 돌아오면 지쳐서 잠들기 일쑤였다. 점차 학교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주말마다 경남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몇 해가 지나고 다시 임용 책을 잡았다. 오랜만에 보는 책은 조금 낯설기도 하고 예전의 두려운 기억도 있고 아무튼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우리반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도 있고 해서 조금은 유리한 점도 있었다. 그런데 그 해 부산의 가산점은 나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나는 부산에 응시하는 교대 4학년 학생들보다 6점의 지역가산점이 없는 채로 시험에 응했다. 총 2차까지 있었는데 1차를 거의 턱걸이로 합격했다. 2차는 교직면접, 지도안 작성, 수업실연, 영어수업실연, 영어면접으로 구성되어 있다. 1월 초에 시험이 있기 때문에 12월 말 학교 겨울방학이 끝나고 어떻게어떻게 파티원을 모아서 함께 스터디를 했다. 교대 4학년, 재수생 그리고 나로 구성된 스터디를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력있게 했다. 그렇게 2차 시험을 모두 끝내고 합격자 발표날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불합격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교육청에서 발표한 커트라인과 비교해 보니 0.4점 차이였다. 진짜 아쉽고 열받고 화나고 슬펐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로 우리는 결혼을 했고 함께 살게 되었다. 0.4점 차이로 처음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부족하기에 단권화 기본서와 문제집만 10번 정도 읽었다. 단권화이기에 조금 부족하다 느꼈지만 그래도 이것만이라도 확실하게 시험에서 쓰게 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1차에서 광탈했다. 이전 해에 0.4점 차이라고 너무 자신만만했던 것일까. 경남에서 계속 있어야 하는 운명인건가. 와이프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와이프는 이번에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되돌아보니 어느새 인생의 목표가 부산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동기들이나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선생님들은 각자의 목표에 맞게 움직이고 있었다. 승진을 위해 한 발짝 다가선 선생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대학원에 들어간 선생님, 과학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 선생님.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예전 임용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매번 원격강의를 위해 자료를 찾고 녹음을 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어 요즘은 아무 생각할 힘도 없다. 갑자기 인생의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다. 그래서 일단은 임용 책을 보내주기로 했다. 지금까지 미련 때문인지 계속 눈에 밟혀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서 사라지면 조금 생각이 정리가 될까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일단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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