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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텍스트 세상 2020. 12. 8. 14:49
최근에 유난히 이 책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서점 베스트셀러에도 이름이 올려져 있고, 공공기관에서도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이벤트를 하였습니다. 커뮤니티 곳곳에도 이 책의 제목과 내용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유명해지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다짜고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과의 지식과 문과의 감성이 합쳐진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SF소설. 근래 보기 힘든 장르인데 한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과학 관련 소설이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제목부터 다시 읽어 보니 뭔가 감성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총 7가지의 이야기가 모여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모르고 모든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구나 하고 여겼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서로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번째 이야기쯤 되어서야 단편이 모여 있는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점점 이야기들 사이에 접점이 생기면서 하나로 모이는 것을 상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소설의 재미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일단 주인공들이 거의 모두 여성입니다. 작가가 여성이라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문득 생각해 보니 이렇게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 등장인물의 거의 모두가 여성인 소설은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신선했습니다. 또 한가지 성별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입니다. 이야기 처음에 이름을 먼저 언급하고 사건을 펼쳐 나갑니다. 평소에 남자들이 많이 쓰는 이름이기에 당연히 등장인물이 남자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습니다. 그 반대도 있었습니다. 저처럼 성별에 따른 이름의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작가의 장치인 것 같습니다. 보기 좋게 당했습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이름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중성적인 이름도 꽤나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남자라고 알고 있다가 여자였고,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이것이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는 이름들이 나왔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 흔치 않게 있습니다. 3월 초에 반 학생들 이름을 먼저 받게 됩니다. 이름을 쭉 훑어보면 성별이 뚜렷한 이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름도 있습니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여학생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적이 떠오릅니다. 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 나의 실수라고 가볍게 생각했을까요. 따지고 보면 그 학생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을 먼저 알게 된 사람마다 저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왜 그렇게 중성적인 또는 보편적인 성별이 아닌 이름을 지은 건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의 작가와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는 술술 읽혔습니다. 군데군데 낯선 과학 용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작품 안에서 설명을 잘 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소설의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과학 용어들이 주된 입장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 간 혹은 사람과 외계 생명체들 간의 관계에 이야기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사람도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닌 미혼모, 장애인, 이주민, 우울에 빠진 여성 등 사회에서 소외되는 인물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SF소설이라고 여겨지는 것과는 결이 약간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읽어보길 잘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철학과 삶의 자세들이 느껴지고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과학소설에서 나의 고정관념을 깨달았고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어서 의미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작가가 쓰는 글을 또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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